"야! 오랜만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2년 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간판의 네온사인보다 태양이 더 밝은 초저녁부터
가게가 주섬주섬 문 닫을 때까지 이제껏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진탕 마셨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우리의 모습이 창가에 비춰보일만큼 바깥은 어두워졌다.
그리고 가게를 나왔다.
아쉬웠다.
버스가 끊기기 전 친구가 가야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친구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버스 끊기는 시간까지 30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야,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고 헤어질까?"
우린 호기롭게 맥도날드로 들어왔고 초코콘을 골랐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에 아쉬웠던 마음이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마치 방과후가 끝난 초등학생들이 아폴로를 먹으며 그네 한번 더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우린 초코콘을 하나씩 쥐고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한참을 먹다가 친구는 말했다.
"있잖아, 초코콘은 초코콘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왜?"
"얘, 초코말이야. 방탄조끼 같지 않아?
아이스크림 본체가 너무 여려서 초코가 감싸주는거지.
근데 말이야, 초코가 겉으로 보기에는 되게 단단해보이지만 베어물면 되게 쉽게 부서진다?
단단해보이는 초코도 사실은 여린거지"
"...."
"야, 힘들 때는 나한테 기대도 돼. 녹고싶을 때는 녹아도 돼"
어느새 아이스크림은 마지막 한 입만이 남아있었다.
항상 마지막 한 입이 가장 아쉽다.
먹을만큼 먹었는데도 말이다.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다.
충분히 만날만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헤어짐은 아쉽다.
그리고 난 그 날도 친구에게 기대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릴적 내게 '인간관계란 화로와 같다'고 하셨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타버리고, 너무 멀어지면 차가워지니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상처를 받지도 상처를 주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모든 친구와
마음을 나누고 싶었고 나누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를 되돌아보니 사람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 커버린 나는 어릴 적보다 '관계'의 기준이 불명확해진 것 같다.
친구의 말을 듣고서 길고 긴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렀다.
'녹고 싶은데. 녹아도 된다고 허락받았는데, 녹아도 될까?'
아이스크림은 혼란스러울 것 같다.
항상 차가워야하지만, 자신은 녹아내리고 싶어하니까.
언제 나갈지 모르는 차가운 곳에서 꽁꽁 긴장하고 있다가
따뜻한 곳에 나오면 녹아내려 손이 찐득찐득해질만큼
자신이 가진 설탕을 보여주는 아이스크림은 어쩌면 차가운 자신보다 따뜻한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고 항상 얼어있기를 바란다.
혀는 차가운 음식보다 따뜻한 음식에서 더 강하게 단맛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아이스크림은 사람들이 더 강한 단맛을 느낄 수 있도록
녹아내려 자신이 가진 달달한 설탕을 보여주고 싶지만
사람들은 그 정도로 단 맛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녹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이스크림은 차가워야만 한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더 단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따뜻한 '내'가 좋은데.
따뜻해서 녹아내리면 숨겼던 여린 모습이 모조리 티난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결국 아이스크림은 차가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이 부여받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은 녹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은 선택받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꽁꽁 얼어있고 녹고 싶다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나 오늘 녹고 싶은데, 녹아도 될까?'
걱정과 달리 그 사람은 당신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녹을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렸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용기내어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 친구에게 녹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가끔 우리는 타인의 곁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속마음을 숨기고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할 때가 있다.
당신의 '아이스크림'은 어떤 모습인가?
"타인에게 숨겨온 당신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속마음을 터는 모습이요. 말랑말랑한 쿠션처럼 어딜가나 나도 기대고 타인도 기댈 수 있는 모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없어졌어요. 어디가버린걸까요? 못 꺼낸지 너무 오래되어서 어디있는지도 모를만큼 숨어버렸나봐요.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 속마음을 숨겼더니 이제는 꺼내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언제 다시 속마음을 털 준비가 될지 모르겠지만, 숨겨온 모습을 보였을 때 타인도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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